자유게시판
제목자기 회복 능력도 실력이다
짐 로허라는 미국의 유명한 행동심리학자가 있었다. 그는 세계 정상급 테니스 스타들이 왜 여타 선수들과 다른가를 알아내기 위해서 프로 선수들의 경기를 수천 시간 분석했다. 그런데 아무리 연구를 해 봐도 결정적인 차이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허탈해하던 그가 어느 날 가만히 보니 최고의 선수들은 경기 사이사이, 포인트와 포인트 사이, 한 세트와 그 다음 세트 사이를 남다르게 보냈다. 그들은 휴식을 취하는 나름대로의 방법을 갖고 있었다. 16~20초라는 짧은 틈새 동안 심장의 박동수를 낮추고, 마음의 긴장을 풀었으며, 다시 집중력을 찾았다. 두세 시간씩 지속되는 테니스 경기에서 이런 초단기 회복 습관은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즉, 탁월한 재능과 기술도 중요하지만, 뛰어난 에너지 회복력이 승자와 패자를 가른다는 것이다.
휴식과 회복 기간이 없으면 신체는 몸 안에 있는 독소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제거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여러 병원에서 일어나는 의료 사고의 주된 원인 중 하나가 의사들, 특히 수련의들의 비상식적인 근무량 때문이라고 한다. 1986년 미국의 우주 왕복선 첼린저 호가 폭발했을 때도, NASA 관계자들의 무리한 발사 강행 결정은 그들이 잠시도 쉬지 못한 채 초긴장 상태에서 20시간을 계속 일한 뒤에 내려진 것이었다.
리더들이 최고의 아이디어를 얻었을 때 그들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밝혀낸 연구가 있는데, 그에 따르면 대부분은 정원, 운동 시설, 극장 같은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고 한다. 일을 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일의 속박에서 벗어난 이런 쉼표는 잠자고 있던 열정의 부활을 가능케 한다.
그래서일까? 윈스턴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시 내각의 수상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도, 늘 캔버스를 들고 나가 몇 시간씩 그림을 그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전략적 낮잠을 좋아하여, <최후의 만찬="만찬">을 작업할 때는 종종 몇 시간씩 앉아서 졸거나 공상에 잠겨 의뢰인들을 당황케 했다. 다빈치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가장 위대한 천재들은 때로 일을 덜할 때 더 많은 것을 성취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내 삶에 이런 숨 쉬는 공간들을 의도적으로 집어넣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한다. 특히 일이 너무 힘들어지고 많아지면 “타임아웃”을 외치고 일단 그 일로부터 잠시 신경을 뗀다. 나가서 격렬한 운동을 하든지, 좋은 사람들과 평소보다 길게 식사를 하든지, 숲 속을 거닐며 산책을 하면서 일부러 그 일로부터 멀어져 버리는 것이다. 얼핏 보면 현실로부터 도망치는 것 같지만, 잠시 그렇게 멀어지는 것이 오히려 육체와 정신을 새롭게 충전시켜 새로운 시각에서 문제를 해결하게 해 준다.
특히, 목사요 교수인 나는 지나치게 피곤할 때는 설교하거나 강의하는 일을 피한다. 마음속에 분노나 불편한 감정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영혼의 독이 듣는 사람에게 흘러 들어간다. 사람은 말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영혼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들어오는 강의 요청 중 상당수를 거절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피곤을 무릅쓰고, 여러 곳에 다니면서 영혼의 독을 흘리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하루의 십분의 일 이상은 휴대전화를 꺼 두고 TV나 컴퓨터도 보지 않는다. 운전할 때에는 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잔잔한 음악을 들으면서 기도한다. 기도하면서 오늘 내가 한 일과 한 말을 반성하고, 앞으로 할 계획을 찬찬히 정리한다. 하루에 운전만 한 시간을 넘게 하니, 조용히 내 영혼을 다스릴 시간이 그만큼 풍성해지는 셈이다. 이런 깊은 묵상의 시간이 없으면 말과 행동이 경박해지기 쉽다. 흐르는 물에는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매일 순간순간마다 할 수 있는 만큼 육체와 영혼의 숨 고르기를 계속하려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일은 너무 기민하게 처리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을 수 있다. 특히, 사람과 관련된 일은 더욱 그러하다. 선진 축구일수록 공간 만들기가 탁월하다. 우리의 인생 관리도 그럴 것이다. 비어 있으므로 무엇이든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유연한 공간을 군데군데 확보해 나가야 한다. 뜻하지 않은 충격과 아픔도 흡수할 수 있는 공간, 내 이웃의 아픔을 돌아볼 수 있는 그런 공간들 말이다. 효율과 성과만 따지는 이 삭막한 세상 속에서 사람 냄새를 맡고 싶다. 어떻게 할지는 당신이 선택할 수 있다.
허탈해하던 그가 어느 날 가만히 보니 최고의 선수들은 경기 사이사이, 포인트와 포인트 사이, 한 세트와 그 다음 세트 사이를 남다르게 보냈다. 그들은 휴식을 취하는 나름대로의 방법을 갖고 있었다. 16~20초라는 짧은 틈새 동안 심장의 박동수를 낮추고, 마음의 긴장을 풀었으며, 다시 집중력을 찾았다. 두세 시간씩 지속되는 테니스 경기에서 이런 초단기 회복 습관은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즉, 탁월한 재능과 기술도 중요하지만, 뛰어난 에너지 회복력이 승자와 패자를 가른다는 것이다.
휴식과 회복 기간이 없으면 신체는 몸 안에 있는 독소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제거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여러 병원에서 일어나는 의료 사고의 주된 원인 중 하나가 의사들, 특히 수련의들의 비상식적인 근무량 때문이라고 한다. 1986년 미국의 우주 왕복선 첼린저 호가 폭발했을 때도, NASA 관계자들의 무리한 발사 강행 결정은 그들이 잠시도 쉬지 못한 채 초긴장 상태에서 20시간을 계속 일한 뒤에 내려진 것이었다.
리더들이 최고의 아이디어를 얻었을 때 그들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밝혀낸 연구가 있는데, 그에 따르면 대부분은 정원, 운동 시설, 극장 같은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고 한다. 일을 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일의 속박에서 벗어난 이런 쉼표는 잠자고 있던 열정의 부활을 가능케 한다.
그래서일까? 윈스턴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시 내각의 수상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도, 늘 캔버스를 들고 나가 몇 시간씩 그림을 그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전략적 낮잠을 좋아하여, <최후의 만찬="만찬">을 작업할 때는 종종 몇 시간씩 앉아서 졸거나 공상에 잠겨 의뢰인들을 당황케 했다. 다빈치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가장 위대한 천재들은 때로 일을 덜할 때 더 많은 것을 성취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내 삶에 이런 숨 쉬는 공간들을 의도적으로 집어넣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한다. 특히 일이 너무 힘들어지고 많아지면 “타임아웃”을 외치고 일단 그 일로부터 잠시 신경을 뗀다. 나가서 격렬한 운동을 하든지, 좋은 사람들과 평소보다 길게 식사를 하든지, 숲 속을 거닐며 산책을 하면서 일부러 그 일로부터 멀어져 버리는 것이다. 얼핏 보면 현실로부터 도망치는 것 같지만, 잠시 그렇게 멀어지는 것이 오히려 육체와 정신을 새롭게 충전시켜 새로운 시각에서 문제를 해결하게 해 준다.
특히, 목사요 교수인 나는 지나치게 피곤할 때는 설교하거나 강의하는 일을 피한다. 마음속에 분노나 불편한 감정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영혼의 독이 듣는 사람에게 흘러 들어간다. 사람은 말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영혼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들어오는 강의 요청 중 상당수를 거절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피곤을 무릅쓰고, 여러 곳에 다니면서 영혼의 독을 흘리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하루의 십분의 일 이상은 휴대전화를 꺼 두고 TV나 컴퓨터도 보지 않는다. 운전할 때에는 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잔잔한 음악을 들으면서 기도한다. 기도하면서 오늘 내가 한 일과 한 말을 반성하고, 앞으로 할 계획을 찬찬히 정리한다. 하루에 운전만 한 시간을 넘게 하니, 조용히 내 영혼을 다스릴 시간이 그만큼 풍성해지는 셈이다. 이런 깊은 묵상의 시간이 없으면 말과 행동이 경박해지기 쉽다. 흐르는 물에는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매일 순간순간마다 할 수 있는 만큼 육체와 영혼의 숨 고르기를 계속하려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일은 너무 기민하게 처리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을 수 있다. 특히, 사람과 관련된 일은 더욱 그러하다. 선진 축구일수록 공간 만들기가 탁월하다. 우리의 인생 관리도 그럴 것이다. 비어 있으므로 무엇이든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유연한 공간을 군데군데 확보해 나가야 한다. 뜻하지 않은 충격과 아픔도 흡수할 수 있는 공간, 내 이웃의 아픔을 돌아볼 수 있는 그런 공간들 말이다. 효율과 성과만 따지는 이 삭막한 세상 속에서 사람 냄새를 맡고 싶다. 어떻게 할지는 당신이 선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