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눈으로 바른 세상을 빚어내는 사람<이문열> - 자유게시판 [112쪽] - 부야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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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열린 눈으로 바른 세상을 빚어내는 사람<이문열>
작성자세정 @ 2009.10.22 16:59:12
1번 열린 눈으로 바른 세상을 빚어내는 사람<이문열>

좋은 사람 100인은 92년 8월, 9월, 2달간 본지 기자들이 일반인 43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찾아낸 우리 나라에서 존경받는 분들입니다. 92년 10월 호의 한 경직 목사님으로부터 94년 11월 호 바둑기사 조훈현 님 까지 스물 여섯 분이 본지에 소개되었습니다.

“제 욕심에 비해 글을 많이 쓰지 못한 게 가장 안타깝습니다.”
한 해를 거의 마감하는 시점에서 느끼는 감상을 묻자 소설가 이 문열 씨는 이렇게 말했다.
'글쓰는 작업을 천형'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던 그이지만 늘 자신의 일상을 글쓰기와 떼어놓지 못하는 그는 타고난 글쟁이인가 보다.
사람의 아들, 젊은 날의 초상,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변경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벅찰 만큼 많은 작품들을 통해 베스트셀러 작가, 스테디셀러 작가로서 확고한 위치에 오르면서 치열하게 작가의식을 불사르는 가운데 그도 이제 불혹의 나이를 훨씬 넘기고 말았다.
1948년 경북 영양에서 출생한 그가 작가로서 첫 선을 보인 것은 1977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나자렛을 아십니까」라는 작품이 당선되면서였다. 잠시 신문기자로 생활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그는 오로지 창작을 업으로 하는 전업작가로서 자신의 30,40대를 달려왔다. 1979년 <사람의 아들="아들">로 '오늘의 작가 상'을 수상한 이래 그의 작품은 연이어 각종 문학상 수상작이 되었고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는 화제작이 되었다.
올 봄에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중심으로 구한말의 시대상황을 담아내 창작희곡 「여우 사냥」을 발표하였고, 각 지면에 글을 쓰고, 작품을 발표하면서 날이 갈수록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는 바쁜 사람이 되고 있다.
“세상에는 일찍부터 자신의 길을 뚜렷이 깨닫고 흔들림이 없이 그 길을 걷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못했어요. 이 길을 들어설 때는 망설임과 불만에 시달렸고, 들어선 뒤에도 길을 잘못 든 게 아닌가하는 회한과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동경에 괴로워했죠.”
뛰어난 문체와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묘사력을 구가하는 완벽한 작가라는 그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을 뒤집어엎는 인간적인 고백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글이 빠른 속도로 세상 속에 자리를 잡아나가면서 많은 대중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데 반해, 스스로의 삶에 대해서는 어떠한 계산도, 꾸밈도 없이 인간적인 고뇌에도 충실했던 사람 이문열, 이것이 짧기 만한 그와의 만남 속에서도 분명하게 전해져오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단편적인 느낌이 아니라 그가 만들어 내는 소설 속의 모든 리얼한 인물들과 상황들의 산실일지도 모른다. 스스로의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을 애써 감추지 않고 정제된 언어로 표현해 냄으로서 그는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나이 사십을 넘기면서 비로소 '천상 글쓰면서 늙어가겠구나.'하고 생각했다는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일까?
“세상에 대한 열린 안목, 다양성과 다원성에 대한 이해를 꼽을 수 있겠지요.”
그의 작품들이 포괄하고 있는 영역, 그의 작품들이 빚어내는 궁극적인 지향만큼이나 폭 넓은 얘기다. 늘 자신의 눈을 세계와 인간 삶의 구석구석까지 열어두는 그이기에 그의 작품들은 사회와 역사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예리하게 분석해 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삶에 대한 집요한 관심을 드러내면서도 결코 성급하게 단 답형의 직접적인 결론을 유도하지 않음으로서 독자가 새겨낼 몫을 던져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그리는 젊은 날의 방황은 보다 나은 것을 추구하는 에너지로 정화되어 사람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실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와 같이, 한 작은 시골 국민학교 교실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쫓아가는 가운데 정곡을 찌르며 강렬하게 풍자되어지는 것이다.
최근 들어 작가 이문열님에게도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특별한 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자리를 뜨는 법이 없던 작업실을 일주일이면 삼일 정도 비우게 된 것이다.
지난 8월 29일부터 세종대 국문과 학생들의 문학개론, 현대소설론 수업을 맡으면서 강단에 서게 되었다.
“캠퍼스에서 젊은 학생들과 호흡하며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소홀했던 이론공부를 새로이 할 수 있어 창작활동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글을 쓸 시간이 줄어들어 작가로서의 활동이 위축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에 대해 그는 작가들이 강단에 서면 작품 활동이 위축된다는 징크스를 깨보겠다고 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강단에 선 직후 현대문학에 「홍길동을 찾아서」라는 단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제 대학 교수라는 새로운 길로 들어선 이문열, 그러나 그가 가지고 있는 소망은 “독자들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분명 나이를 먹어갈 그들과 함께 소설가로서 늙어 가는 것”이다.
하루 24시간이 바쁨에도 얼굴빛이 좋은 비결을 물었다.
“늘 바쁘게 지내고 글쓰느라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지만 워낙 타고난 식성과 체력이 좋아서인지 건강 관리에 특별한 비결이 없는 데도 그럭저럭 건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글 솜씨만큼이나 ”음식 솜씨, 자수솜씨 좋기로 소문난 아내 덕분이 아닙니까?“라고 추론을 펴자, 그는 된장 뚝배기만큼이나 구수하고 따사로운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