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좋아하다 - 자유게시판 [109쪽] - 부야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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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산을 좋아하다
작성자김유하 @ 2010.05.22 16:53:37

나는 산을 좋아한다.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가 친절하고 예(禮)를 안다.
산에서 싸우거나 시비를 거는 일은 거의 없다.
산길을 걷는 모두가 모두에게 다정한 인사를 주고 받는다.


올라갈 때의 그 헐떡거림을 좋아한다.
서서히 몸이 달구어지면서 등에서부터 땀이 나기 시작한다.
이마에도 땀이 나고, 깔딱 고개를 오를 때면 가슴이 터질 듯 하다.
나는 그 순간을 가장 좋아한다.

그 동안의 수고, 고민, 갈등, 피곤함이 땀에 묻어 다 나오는 느낌이다.
헐떡거림에 섞여 필요 없는 노폐물이 사라진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산행 중에는 머리 속이 깨끗이 정리된다.
입산을 하면, 불필요한 걱정, 쓸데없는 생각, 막연한 불안감,
사람에 대한 미움과 갈등 등이 씻은듯이 사라진다.
산을 오르다 보면 산 아래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그 많은 것들이 얼마나 영양가 없는 일이고,
별 것 아닌 일에 마음 졸이고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등산을 하면 자신에 대해 좀 더 알게 된다.
육체적으로 힘든 상태가 그런 깨달음을 주는 것이다.


머리가 맑아진다.
초반의 숨가쁨이 어느 정도 지나면 머리가 맑아지는데,
최근에 이렇게 머리가 맑은 적이 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등산을 하는 동안 육체적인 고통은 머리 속을 맑게 한다.
내가 얼마나 띵한 상태로 살고 있었는지,
그런 상태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했는지 반성도 하게 된다.
당연히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잘못된 의사결정에 대해 반성도 하게 된다.
연락하지 못하고 지냈던 친구 생각도 나고,
소홀히 했던 친구들의 얼굴도 떠오른다.
새로운 결심도 하게 된다. 고민했던 것에 대한 해결책도 떠오른다.


중간의 휴식 시간도 좋아한다.
정상에 도착하기 전 땀을 흘린 후 마시는 생수 한 모금,
그리고 잠시의 숨 고름은 산행을 이어가는 지름길이다.
아직 정상에는 못 올랐지만, 오르는 순간순간 그 과정이 나는 좋다.


등산은 최고의 명상 기회를 제공하며,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등산만큼 쓸데없는 생각을 잊게 해 주는 것도 없다.
등산만큼 내게 반성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없다.


무엇보다 등산에서의 절정은 정상에 도착한 후 밑을 내려다 보는 순간이다.
정상에서 조망하는 산하의 넓은 시야는 마음을 그만큼 넓혀준다.
도저히 오를 수 없을 것 같았던 정상도 한 발 한 발 오르니
결국은 오를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도 갖게 된다.
힘든 고통을 견디며, 전신에 땀을 흘리며, 정상을 밟았을 때,
그 상쾌함과 통쾌함은 말로는 표현하기 힘들다.



모든 종류의 엔도르핀이 쏟아지는 기분이다.
등반은 인생과 비슷하다.
올라갈 때 보다는 내려갈 때가 힘들다.
힘들 때가 있지만 상쾌하고 기분 좋을 때가 있다.
실패할 때가 있지만 좌절하지 않고 성실하게 살다 보면,

희망에 찬 순간이 오는 것도 그렇다.
목표도 중요하지만, 과정 또한 중요하다.

같이 오르는 산행이지만,
산행은 혼자 한발 한발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산행은 고통을 주기도 하지만, 즐거움도 경험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산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