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에게 희망을'- 트리나 폴러스 - 부야칼럼 [22쪽] - 부야한의원

부야칼럼

제목'꽃들에게 희망을'- 트리나 폴러스
작성자한의원 @ 2016.03.25 10:54:26
1번 '꽃들에게 희망을'- 트리나 폴러스

 꽃들에게 희망을’- 트리나 폴러스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어린왕자10대에 읽었을 때, 20대에 읽었을 때, 30대에 읽었을 때, 40대에 읽었을 때... 각각 느낌이 다르다고. 단순한 동화책이라기에는 시사하는 바가 크고 변화한다. 아마 자신의 현재가 변하면서 책을 통해 반영되는 점 또한 달라지기 때문이 아닐까. 나에게는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이 그런 책이다.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그러니까 10살 때이다. 아버지께서 서울로 전근가시게되어 나도 시골의 초등학교에서 서울로 전학을 가게되었다. 나름 시골에서 공부 좀 한다는 칭찬만 받다가(고작해야 한 학년에 2반밖에 되지 않는 작은 학교였다), 서울에는 한 학년에 12반씩 있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도 엄청 많다는 친척들의 겁주려는 장난에 설레임과 두려움이 섞였던 기억이 난다. 당시의 내 일기장에는 그런 내 모습이 고스란히 적혀있었다. 마지막 이별인사를 하는 날, 평소에 내가 많이 따랐던 잘생긴 담임선생님께서(당시엔 총각이셨다) 이별 선물로 이 책을 두 손에 꼭 쥐어주셨다. 평소 나름 책을 많이 읽는다고 자부했던 그 때의 나는 내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이런 얇은 동화책을 권해주시지?’하면서 의아해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 대충 읽고 예쁜 동화책이네~’라고 생각하며 책장에만 꽂아두기를 몇 년... 어느날 나도 모르게 손이 가서 읽게 되었다. 아마 중학교 때였을 것이다. 어느새 서울 생활에 적응하여, 외고를 목표로 내신점수 1점에 一喜一悲하던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앞만 보고 달려갈 때였다. 줄무늬애벌레가 하늘로 치솟은 애벌레탑을 발견하고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채 맹목적으로 기어올라가는 모습에서 내가 보였다!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다른 애벌레를 밟고 올라가야했다. ‘그래도 올라가면 뭔가 있겠지... 뭔지는 모르지만 멋질거야.’ 이 한가지 생각만으로 상처나고 힘들더라도 점점 높이 올라간다. 다른 애벌레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이 탑에서 낙오되면 삶의 의미가 없어질거야. 그러니까 올라가는 수밖에 없어.’라고 생각하던 내 모습이었다. 뭔가 충격은 있었지만 현실의 에벌레 탑을 오르는데 여념이 없었던 나는, 그렇게 또 잊고 열심히 탑을 오르며 살아갔다.

 

20대 즈음에 책장 정리를 하다가 이 책을 다시 읽게 되었다. 10대의 애벌레 탑에서 목표로 했던 정상에 오르고보니(당시 나에게 정상은 원하는 대학교였다) 맙소사, 수많은 애벌레 탑들이 끝없이 솟아올라 있었다. 심지어 높이도 크기도 규모도 너무나 다양했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점들은 그 수많은 탑들의 애벌레들도 왜 올라가는지 모르는 채 맹목적으로 올라온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요즘 뉴스 기사를 보니 10대 청소년들의 장래희망이 돈 많이 버는 사람이라고 한다. 슬픈 현실이다. 자신이 무엇을 잘 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했을 때 가장 행복한지가 장래희망의 기준이 되기에는 사치가 되어버린 세상이다. 부모님 세대조차도 만약 자녀들이 수입과 고용 안전성이 보장되어있지 않은 직업을 장래희망으로 삼으면 다시 생각해봤으면..’하는 생각을 은연중에 내비치게 된다. “사람이 어떻게 하고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있겠니?” 맞는 말이다. 하지만 죽기 전에 사람들이 가장 후회하는 일의 리스트를 보면 하고싶은 일에 도전해 보지 못한 것이 많다. 삶의 끝에서 돌아보면,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살기에도 부족한 인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그렇게 살기에는 당장 해결해야 할 의식주, 부양해야 할 가족, 높은 진입장벽,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들이 이미 우리의 삶에 산재해있다. 이상과 현실을 조율하기가 점점 더 벅찬 요즘이다. 그래서 요즘 현대인들은 늙은 애벌레와 같이 번데기의 인내를 알려주고 나비가 되는 길을 알려주는 멘토를 찾는 일에 더욱 적극적인지도 모른다. 그런 멘토를 찾는 것은 정말 인생의 행운일 것이다. 하지만 결국 번데기가 되는 일은 스스로 해내야 하는 것이다. 어둡고 캄캄한 곳에서 오랜 시간동안 움직이지도 못하고 인내하고 또 인내하며 견뎌야 한다. 그 인내가 무엇일지는 스스로가 선택하는 것이다. 사람들마다 다 똑같은 나비가 되는 것이 아니니까. 나비마다 종류와 크기, 쓰임새 등이 다 달라야 다양한 꽃에게 이로움을 줄 수 있지 않겠는가.

 

요즘은 새삼 책의 제목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애벌레들에게 희망을’, 또는 나비들에게 희망을이 아니라 꽃들에게 희망을일까? 아직 나에게 꽃이 어떤 존재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비가 있어야 꽃이 존재할 수 있고, 꽃이 존재해야 나비 또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이제는 개인의 완성 뿐만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를 이롭게 변화시키는 역할도 훌륭히 수행해야한다는 책임의식이 든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비록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향해있는지 정확히는 알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열심히 살았던 것은 후회하지 않는다. 어찌 사회경험도 없이, 세상의 모든 진로와 모든 경우의 수를 다 겪어보고 가장 적합한 길을 단번에 찾을 수 있었겠는가? 다만 내가 선택한 길에 최선을 다 할 뿐이다. 세월이 가면서 내가 선택한 길에 대한 책임감은 더 무겁게 다가오겠지만, 번데기를 지나 화려한 나비로 변태를 하든, 애벌레로 남아 뽕나무 잎만 먹고 살든 그 삶에 만족하고 최선을 다한다면 내 삶에, 그리고 이 사회에 희망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