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야칼럼
학의 다리는 길고 오리 다리는 짧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고등학교 윤리시간 중 장자에 관해 배울 때였다. 선생님께서 열심히 판서하시길래 나도 노트에 따라 썼다. 무슨 말인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 선생님께서 하시는 설명도 여고생의 깜냥에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윤리 선생님을 좋아했던지라, 선생님이 판서해주신 이 말을 뜻도 모른 채 열심히 외웠다.
그러고 나서 나이가 들면서 『장자』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학의 다리는 길고 오리 다리는 짧다’라는 구절이 생각났다. 『장자』에 있는 구절이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어디 있을까 열심히 찾아보았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장자』 외편의 「변무(騈拇)」 편에 나와 있었다. 원문은 생각보다 길었는데, 그 중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길게 늘여 주어도 괴로움이 따르고,(是故鳧脛雖短 續之則憂)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잘라 주어도 아픔이 따릅니다.(鶴脛雖長 短之則悲)
그러므로 본래 긴 것은 자를 것이 아니며, 본래 짧은 것은 늘일 것이 아닙니다. (故性長非所斷 性短非所續)
이것을 읽고 나니, ‘아~!’ 하는 것이 있었다. 한의대 다니면서, 사람의 특징을 사계절에 추상해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계셨는데, 어떤 분은 나에게 겨울 같다고 하셨고 어떤 분은 나에게 봄 같다고 하셨다.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푸르름이 가득하게 울창한 여름의 기상이 부럽기도 했고, 맑고 청명한 가을의 기상이 부럽기도 했다. 나에게는 없는 기상이 부러웠는데, 이 글을 읽고 나니 부러울 것이 없는 일이었다. 겨울이나 봄이라고 해서 나쁜 것이 아니고, 또 여름이나 가을이라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었다. 오리는 다리가 짧은 것이 자연이고, 학의 다리가 긴 것이 자연인 것과 마찬가지다. 그것을 늘리거나 줄이면 오히려 아픔이 따르는 것처럼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그 매력이 있는 것이다. 오히려 내가 왜 봄인가, 겨울인가를 탓하기 이전에 나는 건강한 봄이나 겨울인가를 따져볼 일이었다. 내가 경계할 것은 병든 봄이나 겨울이 안 되는 것이었다.
사상 체질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군가는 자신이 소심한 소음인인 것이 싫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경솔하다는 소양인인 것이 싫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4차원이라는 소리를 듣는 태양인인 것이 싫을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이익에 민감하다는 태음인이라는 것이 싫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체질에서 좋고 나쁨은 없다. 다 특징이 있고, 다를 뿐이니 이해의 대상으로 바라보아야할 뿐이다. 이제마 선생님께서도 경계한 것은 태양인인 것, 소양인인 것, 태음인인 것, 소음인인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각 체질의 특성에 따라 치우치기 쉬운 성정을 경계했다. 또한 『동의수세보원』의 「광제설(廣濟設)」에서는 태양인은 술(酒)을, 소양인은 여색(色)을, 태음인은 재물(財)을, 소음인은 권세(權)를 경계해야 건강할 수 있다고 했다. 이처럼 각 체질에서는 다른 체질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은 건강한 사상인인가를 염려해야할 것이다.
‘학의 다리는 길고 오리 다리는 짧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이 말이 새로운 울림으로 다가올 때도 있을텐데, 그 날이 기다려진다. 또한 이 구절을 읽는 사람들은 나와 다른 것들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각자의 삶에 여운이 남는 말이기를 바라본다.
<이미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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