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평온히 하기를 권하는 글 - 권평심정사지문 - 부야칼럼 [11쪽] - 부야한의원

부야칼럼

제목마음을 평온히 하기를 권하는 글 - 권평심정사지문
작성자한의원 @ 2022.12.17 09:01:51

平心靜思之文

(마음을 평온히 하기를 권하는 글 - 권평심정사지문)

부제 : 인간의 유전, 진화와 정신에 관한 고찰


 부야한의원 원장 남준범

 

 한 인간의 심리를 분석함에 있어서 유전이 더 큰 영향을 차지하는가 혹은 환경이 더 큰 영향을 차지하는가 는 정확한 수치화가 어려운 만큼 난제로 남아 있다.

 

 이 물음은 나의 선택은 이미 결정되어 있는가, 인간에게 자유의지 라는 것이 있는 것인가 라는 물음에 까지 닿게 되는 일련의 질문에 있어서 그 시작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쉽게 다루어져서도 안되고, 50:50 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도 넘길수 만은 없는 질문거리이다.

 

 나의 성격은 태어나면서 부터 타고 나는 것일까? 태어나면서 부터 타고난다면, 모든것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가 ? 결국 한의학에서 말하는 체질적 관념하에서의 내 정체성 또한 이미 하늘에서 품부받은 4가지 중 하나로서, 장점과 단점이 이미 결정되어진 상황인데. 해야할 것 이 정해지고 하지말아야 할 것이 정해져 있다면, 시간흐름에 따른 나의 운명은 결국 정해져 있고 나는 그 중간의 어느 한 지점을 재생하고 있을 뿐이 아닌가?

 

 위와 같은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의 뇌가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 부터 살펴보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 보자.

 
 현상을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필연적으로 감정을 유발한다. 감정은 생존을 위해 동물이 발달한 움직임을 위한 동기부여 상태이다. 인간의 고등지능은 감정을 공유하고 복합적으로 인식하는 쪽으로 진화해 왔다. 그 과정을 통해 각자의 개체는 집단으로 무리짓고 협동은 포식자와 환경으로부터 생존하는데 유리했으며 이는 생산성의 향상으로 이어졌다.  7만 년 전의 인간은 유전자가 현대인류와 매우 유사하나 기억력과 신체능력이 현대인류를 아득히 뛰어넘는다고 한다. 무리를 이루긴 했으나 일당백으로 사는 생존환경이었기 때문이다. 분업화를 통해 문명을 이룩한 것이 불과 1만년이다. 우리는 찰나의 시간에 뇌를 변화시켰다.

 

 인간사회는 백년이래로 과학문명의 발전과 함께 포식자와 가혹한 환경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로 변화했으며 감정기관의 발달로 인한 부작용은 정신질환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인간들은 필요이상으로 끊임없이 급박하고, 의혹하고, 겁내고, 불안정하다. 생존을 위해 필요했던 감정들은 방향성을 잃어버리고 자해작용을 일으킨다. 항우울제, 항불안제로 도파민을 차단시키는 것은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한다. 애노희락의 병에 빠져 고장난 인간의 뇌는 현대의학이 준 찰나의 시간으로 스스로를 회복하는가? 그 확률은 통계적으로 극히 낮으며 대부분 약물의존이라는 또다른 문제를 야기하기 마련이다.  

 

 한때 전 미국을 떠들석하게 했던 유나바머는 이 모든 고통의 원인을 “필요이상으로 발달한 테크놀로지” 와 “인간의 욕망을 확대, 재생산하는 광고”  2가지로 규정했으며, 대학, 공항을 폭발시켜가며 산업사회를 다시 원시 무정부사회로 되돌려 놓아야 인간의 행복을 되찾을 수 있다고 선언했다. 얼핏 들으면 과격해 보이나 원시 이상사회는 요순시대와 유토피아와 같은 모티프를 공유하는 집단무의식에 각인되어 있는 행복에 대한 이상향이다.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다는 말과도 같다. 인간의 뇌는 작은 공동체 하에서 신체노동을 통한 생산활동을 하고 가족을 꾸리며 공통된 외부의 적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추구하는 결과로 얻어지는 안정감이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하지만 우리는 자초하게 될 공멸이나 불의의 재난을 제외하고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외부에서 자극되는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몇몇 탈출자들은 실행에 옮기지만 대다수의 인간은 시류에 맞추어 뇌에 맞지않는 생활에 적응하려 애쓰며 살아간다. 유나바머는 테러로 테크놀로지의 발달을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으며 뉴욕타임즈지에 실을 그의 선언문을 공개하기 위한 수단으로 테러하였다. 그는 사람들이 그의 선언문을 읽고 변화하리가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천재가 흔히 그렇듯 평균적인 인간의 지능을 과대평가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진화는 매우 천천히 이루어지지만 환경은 급변한다. 인간이 지구상에 있을 시간 동안 스스로 변화하여 환경에 적응할 시간은 이미 없다. 우리는 지금 시점에서 곧장 행복해져야 하고 가장 빠른 진도로 후세에 그 방법을 전달해야 한다. 

 

 우리는 야생에서 생물의 의태 를 통해서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동식물 중 곤충의 의태가 그 중 설명하기 용이한데, 곤충의 의태는 가장 눈에 띄고 빠르게 진행되며 솔직하기 때문이다. 올빼미의 눈을 날게에 박은 나방은 예술가적 소질로 그것을 가능하게 했을까? 벌을 완전히 닮은 파리는 벌을 생각하고 그리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렇게 진화하게 되었을까?


 
 이는 의태, 곧 진화가가 지능의 영역이 아닌 물질적으로는 최소 유전자단위의 영역이며 정신적으로는 의식보다 더 높은 단위의 개념임을 의미한다. 동물의 진화는 곤충보다 훨씬 느리다. 이미 인간은 늦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개인에게 있어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정신은 수 만년을 뛰어넘을 수 있다. 사고실험을 해 보자.

 

 ●우리에게 우울 상태를 유발하는 감정을 음수로 표현하면 -1, -2, -3 . ..  무한대의 음수로 표현될 수 있다.
 ●우리에게 쾌락 상태를 유발하는 감정을 양수로 표현하면 1, 2, 3,  ...  무한대의 양수로 표현될 수 있다.

인간 행복의 상태는 어떤 숫자일까?  여기서 0의 값은 고정되어야 할 것이며. 

정답은 개인별로 달라질 것인데 큰 양수값은 큰 음수값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아는 식자들은 0에 상당히 근접한 숫자가 정답임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0의 값을 어떻게 정의하는가가 우리가 정신적으로 추구하는 이상향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0의 값의 비밀은 기록으로 남아있는 역사적 천재들이 알아듣기 쉽게, 혹은 어렵게, 비유나 묘사 혹은 말이 아닌 음악이나 미술, 행동으로 열심히 표현해 왔다. 그래도 우리는 가장 멋진 0을 찾아야 한다. 스승을 찾아 떠나는 길은 0을 찾아 떠나는 길이다.


 
 동의수세보원을 공부한 우리들은 0에 대해서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거나 이야기 할 수 있다.

0의 한 예는 존기심 양기성 (存其心 養其性) 이 완료된 상태이다. 수렴시키는 방법은 책기심 (責其心)이다. 
다른 한 예는 평심정사(
平心靜思)의 상태이다. 방법은 애노희락의 미발(未發)한 상태의 중(中)을 유지하는 것과 발한 정을 중간에 조절하여 조화롭게 하는 것이다.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책기심 (責其心)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이번 칼럼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우리는 누군가와 상담할 때 “당신은 잘못이 없어요” “당신은 어쩔 수 없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될 수 밖에 없었어요” 등의 이야기를 듣고싶어한다.
 그러나 상담 종료의 시점에 있어서 상담사의 목표와 바른 의사(心醫)의 목표는 같다. 그것은 내담자가 왜 고통받는지 스스로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 다른말로 환자가 책기심 하도록 돕는 것이다.

 

 책기심 (責其心)
은 자책이 아니다. 자책의 의미는 부정적 감정을 내포하고 있다. 감정이 발하지 않은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 책기심이다. 모든 것의 원인이 내 안에 있음을 아는 것이다. 남 탓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를 만들어 주는 것이 책기심이다. 스스로를 탓하는 것은 후회하면서 자해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냥 그런 줄을 깨달으라는 것이다.

 
 
 우리가 0을 찾았을 때 우리 아이는 0을 우리보다 빨리 찾을 수 있고 빨리 접할 수 있다. 그 아이는 0을 후세에 더 잘 전해줄 것이다. 반복하면 유전자에 남는다. 그 과정은 이미 시작되어 있다. 개인의 깨달음과 관계없이, 진화적 측면에서 우리 모두는 0으로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