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론 - 부야칼럼 [11쪽] - 부야한의원

부야칼럼

제목쾌락론
작성자한의원 @ 2023.11.02 16:19:05

쾌락론

 

부야한의원 남준범 원장

 

 

당뇨와 심장병 등 만성 대사성 질환의 진단을 받고 내원한 많은 태음인 환자들의 공통된 질문은

 

 

 

술을 며칠에 한 번, 얼마나 먹으면 괜찮은가 이다

 

 

 

누가 정했던 간에 정해져 있는바는 없는 질문이다. 질문의 요지는 조금은 먹어도 되겠지요?

 

얼만큼 먹어야 하는지 가르쳐 주세요. 그정도는 즐겁게 먹겠습니다 이다.

 

 

 

태음인은 간국이 크고 폐국이 작아 흡취하는 바가 크고 호산하는 바가 적다.

 

받아들이기를 즐기며 내뱉지 않는다는 말이며 취하기를 즐기고 나누지 않는다는 말이니 물욕에 대한 말이요 쾌락에 대한 말이다.

 

 

 

맥주가 태음인에게 해로운 이유는 그 부피가 크고 탄산의 포만감으로 흡취에서 오는 쾌락을 한껏 끌어올려 주기 때문이다.

 

 

 

맥주의 양은 무의미하며 과로후 퇴근하여, 씻고난 이후, 한 캔 가득 컵에 따라, 원샷하여, 쾌락을 느끼는 그 마음을 조절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만 아는 자는 알지 못하는 사실이다.

 

 

 

함께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면식인데, 컵라면 한 사발을 두 젓가락 만에 끝내는 즉각적이고 빠른 섭취를 통한 쾌락추구적 행위로서 밀가루 자체의 문제를 넘어선 섭식행태와 매체의 차이라고 할 만큼 쾌락적 면 섭취 행위는 장기적으로 대사질환을 일으키는 행태이다.

 

 

 

한 캔, 두 캔, 세 캔은 그 마시는 마음가짐에 비하면 무의미함에 가깝다.

 

술과 면을 쾌락으로서 의존하는 마음가짐 자체를 경계해야 함이다.

 

따라서 행동치료적 방법에는 혼맥과 면식을 끊으라는 지시적 방침이 있을 수 있겠으나 억지로 참음을 유발하고 부족한 쾌락은 다른 곳애서 충족시키려 하기 나름이다.

 

 

따라서 우리가 음식의 궁합을 공부할 때는,

 

음식의 맞고 안맞음을 배우는 것에서 넘어서서 그 음식의 섭취에 있어서의 마음까지 자연스럽게 고려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 좋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자연스럽고 마음에 역행함이 없이 건강행태의 선순환으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맥주와 면을 무작정 먹지 마라는 방침보다

 

먹더라도 즐기지 않고 조금씩 대충 먹으라 는 마음자세적 부분에서의 방침이 오히려 지속가능하다.

 

 

 

 

- 그럼 어디에서 즐기는가? 한의사는 상위쾌락의 추구 즉 근면함에서 즐거움을 얻으라는 방침을 제안할 수 있다.

 

가장 건강한 행태인 유산소 운동. 달리기로서 즐거워 하라는 책략을 제안할 수 있다.

 

이에 관한 설명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 음주와 식사에 치우쳐져 있는 쾌락의 점유율을 잘게 잘라, 소분할 다원화 하여, 근면성실하게 행할 수 있도록 포진하고, 그 생활로 가볍게 옮겨가는 것이다.

 

여기서 쾌락의 소분할 다원화라는 것은

 

죽을 때 까지 할 수 있는 취미, 돈이 많이 들지 않는 취미, 사행성이 많지 않은 취미, 너무 재미있지 않은 취미, 너무 재미없지도 않은 취미거리 들을 여러 가지 만드는 것이다.

 

이는 장년취미생활 로의 이행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할아버지 할머니 취미 라고도 할 수 있겠다.

 

건강하고 장수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취미가 무엇인가. 꽃꽂이, 서예, 필사, 독서, 낱말퍼즐, 정원가꾸기, 목공예, 가벼운 낚시. 등산, 산책, 즐거운 대화, 선인을 가까이하고 악인을 멀리하는 것 이다.

 

 

 

도박, 주식, 음주, 색로, 탐식행위, 기화요초에 벽하는 행위

 

는 쾌락추구자들의 단명행태이다. 이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오히려 인생의 목적이 쾌락에 있는바 그를 따르는 행동을 하니 솔직한 이들이며 위선하지 않다.

 

오히려

 

타인이 내 바라는 바로 하지 않아 노하는 것,

 

본인의 문제를 다른 사람의 문제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

 

아무것도 하기 싫어 하는 것,

 

낙이 없어 하는 것,

인생에 무의미함을 느껴 힘들어하는 것,

 

지나간 세월에 아쉬워하는 것,

 

줄어든 경제력에 대해서 갈망하는 것

 

사라진 건강에 대해서 갈구하는 것,

 

흔적도 없는 사회적 존경에 대하여 슬퍼하는 것.

 

은 죽을 때 까지 속된 것에 가치를 두면서 위선하는 자의 어리석은 단명행태이다.

 

 

 

 

지옥의 문은 위 두 부류 모두를 위해 좌우로 활짝 열려 있다.

 

 

 

 

 

생명의 문은 가는 길이 좁고 험하여 범 사람들이 가려 하지 않으며

닿더라도 그것을 벽으로 알고 문을 두들기려 하지 않곤 한다.